배우고 가르치며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학교
세상 어느 학교보다 아름답고 큰 학교 '김해야학'
newsdaybox_top.gif 2011년 11월 01일 (화) 09:32:11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newsdaybox_dn.gif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고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철따라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한다. 학예회도 하고, 교지문집도 만들어낸다. 감동으로 북받치는 졸업식도 한다. 홈페이지도, 교목도, 교화도 있다. 한 마음으로 교가도 부른다. 이들에게 없는 것이라고는 전용교실과 운동장이다. 그렇지만, 세상 어느 학교보다 아름답고 큰 학교이다.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김해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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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야학 박충근 교장이 사회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나는 1946년생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64살입니다. 내 고향은 두메산골 지리산 골짝입니다. 내 나이 8살 때까지 밤이면 산에서 공비가 내려와서 쌀과 옷들을 다 가져 가곤 했지요. 그래서 공부를 못 배웠답니다. 항상 가슴 속 한은 공부였지만 배울 길이 없었다가 자식들 권유로 2009년 4월부터 김해야학을 다녔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다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이제라도 배워서 능숙하지는 않지만, 펜을 들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기쁩니다. 선생님 모두 감사합니다." 김해야학에서 펴내는 교지문집 '금빛바다' 2009년 호에 실린 학생 A씨의 글이다.
 
국가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휩쓸고 지나간 시절, 많은 사람들이 공부할 시기를 놓쳤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남자형제들을 위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가정형편과 개인사정에 따라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나, 배우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라지지는 않는다. 죽는 그날까지 좀 더 나은 존재로 성숙해지고 싶어 뭔가를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앎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학력 인정을 받기 위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검정고시학원이겠지만, 학원보다 학교를 다니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김해야학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학교이다.

인제대 운영 종합사회복지관내 지난 1999년부터 더부살이
전용교실과 운동장 빼고는 교목·교화·교가·홈피도 있고 소풍·운동회·학예회도 한다

김해야학은 지난 1999년 개교했다. 교실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그해, 인제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이성기 관장의 이해와 배려로 복지관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현직교사와 학원 강사 등, 김해의 선생님들이 무보수로 봉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운영을 위해 교사들은 매월 회비도 낸다.
 
오후 7시, 김해야학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의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열일곱 소녀 B양은 얼마 전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현직 교사인 선생님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B양은 김해야학에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가정형편 상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지 못했던 B양에게 야학은 또 다른 사랑의 공간이었다. 어머니같고 할머니같은 야학 학우들이 부모님 못지 않은 사랑과 우정으로 B양을 안아주었다. B양은 학우들이 물어보는 수학문제도 척척 풀어준다. 이들은 김해야학에서 공부 뿐만이 아니라 사랑도 나누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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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라도 놓칠라'. 학생들의 열의가 뜨겁다.
올해 환갑을 맞은 C씨는 중학교·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1년 만에 통과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고, 집안 일 틈틈이 책을 들여다봤다. 야학에 왔다가 집에 가면 밤늦게까지 또 공부를 했다. 코피를 흘리는 일도 있었다. 가부장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던 C씨는 합격한 이후에 '삶이 달라졌다'고 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김해야학 학생들의 가족이 보내는 성원은 크다. 야학에 다니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D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야학을 다니면서 선생님과 학우들 자랑을 많이 한다. 아내에게 스승이 생기고 동창생이 생긴 것이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언제라도 나이를 떠나 그 길을 걷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좀 배웠답시고 졸업장 몇 장 믿고 그 길을 외면한 사람들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그 길에 들어서는 야학의 학생들이 오히려 더 당당하지 않는가"라고.
 
초등학교 과정을 다니는 어머니를 둔 딸 E씨는 편지를 보냈다. "엄마! 늦게나마 열심히 배움으로 인해 엄마가 글 쓰는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습니다. 엄마에게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고요. 힘들게 얻은 기회이니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잘 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응원할께요."
 
놓쳐 버린 배움의 기회를 다시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은 김해야학 교사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불태운다. 김해야학 박충근 교장은 "단 한 명이라도 배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김해야학 교사들은 야학을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는 수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생림면 나전리 예비군훈련장내 5870부대 3대대 김종국 대대장은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부대원들을 위해 김해야학에 도움을 청했다. 김해야학 교사들만으로는 힘들어 퇴임교사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그 결과 다시 공부를 시작한 장병들 중 4명의 고졸검정 합격생을 배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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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세월동안 김해야학을 지켜온 것은 한결같은 교사들의 봉사정신이었다. 현직 교사, 학원 원장이나 강사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회비를 내면서 무보수로 야학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봉사이기 때문에 10년 세월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화철오 교감은 말한다.

지난 10년 세월 변치 않은 교사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올해 전국자원봉사대축제에서 교육봉사단 우수상도 받았다

김해야학 교사들의 고귀한 봉사정신은 올해 열린 '제18회 전국자원봉사대축제 자원봉사한마당'에서 교육봉사단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자원봉사단체는 20여 만 개에 이른다. 각 지자체에서 이것을 1만개로 추려 응모하고, 몇 차례에 걸쳐 다시 추려내고, 약 3개월간에 걸친 심사를 통해 30여개 단체가 상을 받았다. 김해야학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사들의 봉사활동과,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정규학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배움에 갈망하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김해야학의 순수한 교육에 대한 정신'이 높은 점수를 얻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변함없이 봉사하는 교사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결과인 것이다. 김해야학 전·현직 교사들과 모든 동문들의 기쁨이기도 하다.
 
최은옥 교무주임은 "야학의 교사로 일해 온 시간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차고 가슴 뜨거운 날들"이라고 말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교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배움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해 온 김해야학이 지금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다. 10년간 종합복지관에서 더부살이 생활을 해 왔는데, 복지관 프로그램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한 마음으로 말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교실입니다!"
 
모든 것이 있는데, 교실과 운동장이 없는 김해야학. 늦은 밤 책을 펼치고 공부에 빠져드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취재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큰 것을 배우고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해야학에서 꿈과 희망을 펼쳐가는 학생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교사와 학생들이 원하고 있는 교실도 빨리 마련되기를 응원한다.

김해야학은
교사 25명 무보수 봉사, 검정고시 150여명 통과, 학생·교사 수시로 모집
김해야학은 1999년 개교했다. 박충근 교장과 화철오 교감 등 25명의 교사들이 무보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졸업장 수여 기준인 검정고시 통과를 한 졸업생은 150여 명에 이른다. 교사들은 "수십년 현직교사 생활을 했지만 야학에 와서 감동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초등부는 오전에 수업을 받는다. 미술과 음악시간도 있다. 중등부와 고등부는 저녁수업을 받는다. 중입 검정고시, 고입 검정고시, 고졸 검정고시 과정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다. 교육비는 교재까지 전액 무료이다. 배우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김해야학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있는 줄 알았다면 진즉 와서 공부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생은 수시로 모집하고, 교사도 모집한다.
김해야학 장소/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 3층. 문의 및 후원 상담전화/011-9244-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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