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은 나를 차분하고 얌전한 성격일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상당히 다혈질적이고 성급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다분히 모친에게서

물려받은바가 유전적 형질이 크다. 이런 성격으로도 나는 이제까지 차분히 앉아서

하는 일인 책 읽는것을 많이 했다고 생각되는데(이는 물론 나의 개인적인 판단임),

이것이 바로 학업으로 전환되었더라면 하는 소망은 진작부터 있었더랬다.

그러나 다른 책들은 그토록 흥미가 가면서도 진작 교과서에는(특히 수리과목에는)

별반 흥미가 가지 않으니 공부를 잘하기는 애시당초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내가 책을 많이 읽었던데에는 다 사연이 있는데 자 지금부터 마지못해 열심히 책읽던

시절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듣기 싫으면 읽으면 됩니다...  썰렁했다면 심히 미안타 --;;)





어린시절 부모님은 두분 다 일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도시서민층이어서 나를 돌보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고, 그런 집안에 틀혀박혀 있을리도 없는 나여서 당시 발걸음이 닫는

곳은 어디로든지 싸돌아 다녀 해가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당시의 큰 기억으로 남아있는 도보여행들은 다시 글로 쓸 예정이다)

그런중에도 집안에 단 하나가 있던 문화의 혜택이란 국민학교 1학년때

당시 모친의 두달동안의 노동의 댓가로 할부구입했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50권이었다.

다분히 장식효과를 노린듯한 책꽂이와 딱딱한 외장의 소장판이었던 책은 '소년소녀'란 제목을

달았음에도 도리어 글이 깨알같아 어린 나에게는 읽기가 상당히 불편하였었다.

그럼에도 TV가 나오지않는 낮시간,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좋아하는 싸돌아 다니기를

할 수 없었기에 할수 없이 그 책들을 읽지 않을수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기까지

그 50권중에 당시 나에게 상당히 어려웠던 [모히칸족의 최후]같은 몇권을 제외하고는

정말 수도 없이 읽어서 나중에는 몇몇 책들은 아주 외울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이처럼 나에게 독서란 것은 내가 찾아서 한 것이라기보다

나의 무료를 달래기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를 올라가서 다시 책을 열독하게 된 계기는 재미없는 영어, 수학대신

나의 흥미를 당겼던 무협지에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무협지는 교과서보다

작은 칙칙한 갱지(그때 말로 똥종이)에 깨알같은 세로쓰기로 되었던 책인데 한 페이지에

몇자 적히지 않아 수백페이지정도되는 한권도 술술 넘기곤했었다.

중 3때 부터는 수업시간에도 교과서밑에 몰래 무협지를 숨겨서 하루에 서너권씩은 꼭 읽곤

하다가 정점을 맞이한 시기는 고등학교 입학이 확정된 중3 12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 말까지 였다.

그 당시 모친은 나에게 학원을 권유했었는데, 대신동에 있는 대신학원, 경남학원 같은 곳의

단과반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런 단과학원이란 곳을 처음 갔었는데, 학교에서도 공부하지 않던

내가 학원이라고 공부를 할리는 만무해서, 대신동 근처 괴정까지 발길 닿는대로 다 싸돌아 다녔던

보름동안을 제외하곤, 다시는 학원이란 곳을 가지 않았다.

그이후 학원생활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에서는 학원을 아주 열심히 다닌것으로 알고있으나 학원은

근처도 가지않았으니 모 서울대 합격생의 말대로 '학교공부만으로도 충분했어요'였다.

(놀기만해도 바빴다.)

수강증도 친구것을 빌려서는 위조비슷한 것을 했었고, 꼬박꼬박 그 시간되면 사라졌었으니...

학원을 가지 않은 대신 그 시간동안 만화방이 내가 시간을 죽이는 장소였다.

어차피 내지 않았던 학원수강료와 오고가는 차비등 당시로서는 어느정도의 돈은 있어서

아주 죽친다는 표현 그대로 만화방 구석에 쳐박혀 그 한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던 무협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서도 비용을 아끼는 꼼수를 쓰는 방법은 만화방구석에서 일단 한 10권정도 배포크게 무협지를

빌리고 구석에 가면 그 10권을 아주 속독하고 난후 다른 책들과 몰래 바꿔 읽는 것이다.

하루 5시간 이상씩 그렇게 지치지 않고 읽어댔고, 얼마후 그 만화방의 무협지는 독파를

하게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방학의 한 중간이었고, 이후 다른 만화방, 또 다른 만화방을 전전했지만

만화방의 무협지란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서 머무르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마침내 우리 동네 만화방의 모든 무협지를 모조리 다 읽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읽어댔던 책들을 수레로 실으면 아마 다섯수레를 넘지 않을까? ㅎㅎㅎ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댔던가?ㅎㅎㅎ (男兒須讀五車書)



그렇게 올라간 고등학교에서 딩굴딩굴거리다 어쩌다 들어가게된 대학에서 다시 책읽기에

열중하게된 계기가 생기는데, 동네 동아리 선배의 취중망언에 기인한다.

선배曰 자신이 1학년일때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 선배가 시간이 많은 1학년 여름방학때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며 읽어야 될 도서목록을 죽 적어주었는데 그 수가 딱 100권이었단다.

자신이 그 100권을 다 읽지는 못하고 2학년이 되어서야 다 읽게 되었는데 많이 도움이 되더라면서

나보고도 권하는 것이었다. 비록 취중(醉中)이었다 하나 하늘같은 선배의 책읽으라는

망언(妄言)이랄것까지야 있으랴마는 왜 그 말이 망언이 될수가 있느냐 하면 지금이야

공인회계사로 잘 나가는 선배지마는 당시만해도 고시준비생 비슷한 처지라 거의 폐인모드였던

선배가 자신이 받았던 그 100권분량의 목록을 전해주지 않고 취중망언으로 끝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표도 없이 그저 100권이라는 분량만 생각하고 대학 첫 방학을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독서에 도전하게 되었었다.

정말 닥치는대로 읽어댔었는데, 당시 대학생의 필독도서란게 있었는데 한창 유행이던

대하소설 시리즈였었다.

그때 인기를 끌던 조정래의 [태백산백], 작가가 감방에 간 덕택에 금서 비슷하게 취급되었던

(금서였었나?)

황석영의 [장길산]등 10권짜리 무식한 책들이었고, 당시 활발하게 나오던 이상문학상수상집,

동인문학상수상집등 한창 나오던 연도별 문학상 수상집, 그리고 대 유행이던 동의보감, 목민심서등
몇권짜리 인물집 시리즈들이었다.

책은 봐야되고 책 살돈은 없는지라, 선배들한테서 한권씩 빌려 보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2권씩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는 학생은 2권이 최대 대여량이었다.) 빌려보았다.

물론 방학중 100권을 읽는 다는 목표는 당연히 실패하였지만 그렇게 시작한 책읽기는

군대가기전까지 계속되었다. 요새는 그나마 좀 낫기도 하고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빽빽하고 많은 인물들이나오는 정통 대하소설들을 처음 대하던 터라 책을 읽으면

한 100~150페이지 정도(시간으론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정도) 읽으면 머리에서 열이나고

어질어질해서 더 이상 못읽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오전중에 한 판하고 저녁먹기전이나 자기전에 한판해서 당시 대하소설

한권 분량이던 350~380 페이지를 하루에 다 읽을수 있었다.




그렇게 놀고 먹던 대학1학년이 가고 군입대를 하게되어, 정예육군통신병의 큰 꿈을 품고

육군통신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성실히 수료한후(사실 통신학교에서 전선을 다룬시간의

두,세배는 삽으로 야외교장 정리하느라 바빴다) 자대 배치받아 얼토당토않게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하나로 행정병을 하게 되었다.

(그뒤로 거의 대학생만 입대했었지만 내가 자대 배치받을 당시만 해도  부대에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60명중 5명이 안되었다.)

여기서 나는 그 많았던 읽기보다 쓰기에 중점적이게 되는데 당시 행정반의 유일한 장비는 등사기와

타자기였다. (나는 타자를 타자기로 배워 요즘도 타자를 치면 시끄럽다)

매월 부대원들 월급이 나갈때나, 마침 잘걸려 상여금도 함께 나갈때면 쉼없이 적어야 했던

그 부대원들의 군번과 이름들...(하루에 모나미볼펜 한자루를 쓸때도 있었다.)

그렇게 낮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대다가 자유시간이 되면 또 누구에겐가 편지를 써대기 시작했다.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지만 나갈수 없고, 더군나 읽을 책도 없는

(군에서는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사야 되는데 군인의 한달월급은 책 한권을 사면 없다.

나는 음료수나 과자를 좋아해서 그것을 희생하면서 책을 사는 미친짓을 하지 않았다.)

터라 남아도는 종이와 볼펜으로 끊임없이 써대기 시작했었다.

대상은 한사람이 아니라 군대오기전 친분이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써대서 나중에

전역하고서 누군가 회상하기를 답장도 안해주는데 정말 많은 분량으로 끊임없이 와서 나중에

미안하더라는 말까지 들었다.  

동아리 동기중 하나는 평생받은 편지의 3/4이 내 편지일 정도였다.

그렇게 써대니 지렁이 같던 내 악필도 점차 교정이 되어 전역할때 즈음에는 제법 글씨처럼 보이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올릴수 있었다. (이때부터 각종 필기구를 모으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전역을 하고 나서 다시 한번 짧게나마 열독의 시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동아리 후반기 회장을

예약을 해놓았던 때였다. 전역을 5월에 했었는데 9월부터 회장이 예약이 되어있어 후배들 교육을
위해 미리 공부를 해야만 했었다. 당시 나는 전역하자마자 군대 동기였던 녀석의 큰형이 운영하던

경기도 남양주시의 '관(棺)'공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곳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오지였다. T.V 수신이 잘 안돼 자주 치치직 거리고, 하루에 버스가 4대 다니면서 가게라고

불리는 곳이 버스정류소 옆에 단 한곳있는, 그나마 그곳엘 가려면 한 10분남짓 걸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마석 가구단지'로 유명한 곳의 근처였는데 그 집의 부모님 역시 가구일을 평생하신 분들이어서

나무 다루는 일은 가족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곳에서 오후에 일을 마치면 할일이 있을리 만무해서

(잔업을 하는때도 가끔 있었는데 그곳에서 잔업을 많이 한다는 것은 갑작스럽게 사람이

많이 죽었을때 뿐이라 마음이 착찹하기 짝이 없었다. 잔업하기 싫어서 그런것이 아니다.

진짜다....) 저녁때는 싸들고 올라간 책들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거의 모두가 사회과학책들이라

거의 공부하는 수준으로 읽었다.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옆에 공책을 펴놓고 써가면서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신영복선생의 말이 무슨뜻이지 그때서야 알수 있었다.

" ... (전략) 과거에 우리나라의 서당에서 수학하던 방법은 참으로 우직하기 짝이 없는 방법

이었습니다. 무조건 암기하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암기하는 그런

우직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서당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록자대야(?鹿者大也)라는 이야기입니다.

미록자대야란 ‘미(?)는 사슴중의(鹿者) 큰놈이다(大也)’라는 뜻이지요.

'?'은 ‘큰사슴 미‘자거든요. 당연히 ?, 鹿者, 大也라 띄어 읽어야 맞지요.
  
그런데 아침에 책방도령의 글 읽는 소리를 듣자니 ?鹿, 者大也로 읽더라는 것이지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책방도령의 읽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 鹿者, 大也로 바르게 끊어서

읽더라는 것이지요. 스스로 깨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직한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영어공부를 대체로 10년정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논문을 쓰거나
영시를 짓고 감상할 정도가 되기는 어렵지 않나요?
  
그러나 과거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4, 5년이면 뛰어난 문장력과 작시(作詩)수준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과학적 방식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원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후략)"

그야말로 선생이 없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現)의 무식한 방법이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집이 책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집안이 되나서 종이가 부족했다.

군대시절 행정반의 그 흔하디 흔했던 종이가 이 집에서는 귀한 것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남아있는 습관인 종이에 연필로 한번쓰고, 볼펜으로 한 번 더 쓰는 어찌보면

아껴쓰는것 같고, 어찌보면 좀 없어보이는 짓을 하게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5월말부터 8월말까지 꼬박 3달의 저녁시간과 휴일의 대부분을 조그만 동기녀석의 방에

틀혀박혀 라디오만 들으면서 책을 읽어댔다. 한보따리 싸들고 간 책의 수는 약 30여권, 다 읽고

나서 기억이 안나두번씩 읽은것들도 몇권될만큼 열심히 봤던터라 후배들에게 유식하게 보이는데는

최고였다. ㅎㅎㅎ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다 거짓말이다. 책읽는 것 같은 재미없는 일이 이렇게 날좋고 바람 살랑불어 놀기 좋은 가을에

맞을리가 없는 것이다. 가을은 싸랑하는 님의 손을 잡고 단풍놀이가서 맛난거를 먹어주어야 정상인

계절인것이다. 오히려 추워서 밖에 싸돌아 다니지 못하고 할일이 없는 겨울같은 때라야 비로소

책이 읽혀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내 인생에서 말했던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시기들은 마치 겨울과 같았던 시기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그렇게 책 읽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살이가 어디 마음대로 될수야

있겠는가마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흐트러지지 않았던 내 모습들이 영양분이 되어 봄에 싹을

튀웠으면 하는 것은 내 욕심일까?

오늘 문득 신영복교수의 이런저런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사람도 이렇게 겨울이 길었구나 싶다.

(이것도 신영복교수의 글을 읽고 필 받아서 쓴거다. 읽고 너무 짜증내지 않았으면 한다. --;;;)

책을 읽는 다는 것, 또한 사람의 깊이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한사람의 인생의 겨울을 거쳐서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이나 책을 써내는 것이나 그 사람의

겨울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곳에 오래 묵혀야 잘 삭힌 장을 만들어지는 것처럼.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바쁜시간속에 그 많은 저작을 언제 쓸수 있었을 것이며

그람시가 그 유명한 선고를 듣고 빵에 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옥중수고"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개인에게는 굉장한 불행이 되겠지만 저들처럼 똑똑한 것들은 귀양을 좀 보내서

푹 삭힌 된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모두가 혜택을 받지 않는가 말이지.

(물론 나같은 모자란 것들은 인생을 즐기게 놔둬야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내모는 것들은

마치 쌀이 부족할땐 보리, 밀가리를 먹으라 하고 이제는 쌀이 보약이라고 떠드는 앞잽이밖엔

안되는 언론 나부랭이들이 하는 이야기일뿐이다. 가을엔 좀 놀아주자.  (0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