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에 대한 신문기사
글 작성 시각 : 2004.12.13 12:10:33  


야학 '평생학교'로 변신

[중앙일보 2004-12-13 06:23]

[중앙일보 임장혁.정강현 기자] #장면 1="시내 중앙시장에서 지게를 지는 최씨 아저씨도 야학에 등록했다.

지겟짐을 지노라니 시내 길이야 훤하지만 문패를 읽을 수 없어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업단지에 있는 메리야스 봉제공장에 다니는 열일곱, 열아홉 먹은 정읍댁네 두 딸도 나란히 야학에 찾아왔다.

(…)책이며 공책을 바꿔가며 공부해 꼭 고졸검정고시까지 해내겠노라고 결심이 대단했다."

(김남중의 '기찻길 옆 동네'중에서 1970년대 말의 야학을 묘사하며, 2004년)


#장면 2=충북 청주에 있는 '심지야학'은 최근 '대중가요'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네박자' 등 트로트 가요를

함께 부르며 음악 이론을 공부하는 시간이다. 50명의 '주부 학생들'에게 이 수업은 가장 인기다.


과거 빈곤층과 노동자들의 권리찾기에 디딤돌이 됐던 야학이 40~50대 중산층의 '평생교육센터'로 변하고 있다.

검정고시를 대비하던 교과 편성도 컴퓨터.생활법률.대중가요 등 실생활에 필요한 과목들로 채워지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켰던 애국계몽운동에 뿌리를 둔 야학은 70~80년대 '노동야학'을 거쳐

이제 '생활 속의 야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야학이 대안.평생 교육을 담당하는 비제도권 교육기관으로

변신하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이 주로 찾았던 야학교실에는 자가용을 몰고오는 중산층들도 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7시 군산 청학야학에 다니는 이모(53)씨는 근처 공터에서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를 세울 곳을

못 찾아 10여분을 지각했다. 군산에서 자동차 부품공장을 운영하며 1년6개월째 밤에 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씨는 "과거 못 배웠으나 이제 먹고살 만한 40~50대가 야학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변신하는 야학=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저학력의 중산층들을 끌어당기는

야학의 매력이다. 서울 월계동 '참빛야학'에 다니는 김모(36.여)씨는

"사람이 비교적 많은 학원이나 지역문화센터보다 사람 수가 적고 인간적인 유대가 끈끈한 야학이

주부들 사이에 인기"라고 말했다. 전국야학협의회(이하 전야협)는 전국 161개 야학의 수강생 1만2000여명

가운데 8400여명(70%)을 주부들로 추정하고 있다.


대학생 위주로 구성되던 야학 교사들이 직장인들로 바뀌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전야협에 따르면 현재 2000여명에 달하는 야학 교사 중 절반이 넘는 1060명(53%)이 직장인이다.

직장인 가운데는 현직 교사가 700여명으로 전체의 65%를 차지한다.

10년째 야학 교사를 하고 있는 전야협 김호석 사무총장은 "취업 등의 문제로 야학을 외면하는 대학생들의

빈 자리를 직장인들이 메우고 있다"며 "현직 교사가 야학에 뛰어들면서 수업의 질도 향상됐다"고 분석했다.


◆ 불 꺼지는 야학교실=야학의 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정과 인력난으로 문을 닫는 야학은 늘고 있다.

한때 전국에 200여개가 넘던 야학은 2004년 10월 현재 161개로 줄었다. 현재 야학들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돈은 문화관광부의 '비정규학교 지원기금' 300만원이 전부. 시.도 지원금과 각종 후원금을 합쳐도

야학들의 1년 예산은 1000만원을 넘기기가 힘든 형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소외계층을 위한 평생학습 기회 확대와 교육복지 차원에서 내년까지 평생교육법을

고쳐 야학을 학력인정기관으로 인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임장혁.정강현 기자

sthbf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