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는 쓰고 죽어야지" 93세 노인의 한글 깨치기
[뉴시스 2007.01.09 10:01:49]

  
【단양=뉴시스】"이름 석자는 쓸줄 알고 죽어야지…"장영옥(93.충북 단양군 매포읍) 할머니가 한글 배우기에 나선 이유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하루 2시간씩 매주 두차례 진행되는 '소백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90대 노인의 기억력은 어쩔 수 없다.

8일 오후 단양군 매포읍 평동1리 경로당에서 만난 장 할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 석자를 쓰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지난주 수업시간만 해도 '이름쓰기'를 뗐다는 축하의 박수까지 다른 할머니들로부터 받았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라졌다.

어렵사리 이름 석자를 완성한 장 할머니는 다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내 탁상 밑으로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평생을 안고 살아왔던 '문맹의 한' 때문이다.

"젊어서 못배운 게 서러워서 그래…"14살에 시집을 온 이후 여지껏 교회를 다닌 독실한 신도지만 여지껏 자기 손으로 헌금봉투에 이름을 써보지 못했다. 은행 같은 곳은 더더욱 가보지 못했다.

그 시절을 살아 온 지금의 노인 상당수가 그렇듯이 4형제의 맏이인 장 할머니 역시 학교 운동장 한번 밟아 보지 못하고 교육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

수업시간에는 계속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 잠시 누워 있을 수 있는 최고령자의 '특권'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진도가 늦어져 다른 할머니들에게 늘 미안한 생각 뿐이다. 이름쓰기를 온전히 뗀 뒤에는 먼저 간 남편과 자식들의 이름도 배워 볼 생각이다.

"시절을 잘못 만나 못 배웠지, 주변에 글을 아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농사나 짓는 여자라고 아무도 안 가르쳐 줬어"라며 장 할머니는 한 서린 푸념을 내려 놓는다.

소백학교 670시간을 이수하면 어엿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장 할머니는 졸업장과 함께 개근상도 주겠다는 장상례(51) 교사의 말에 "내가 뭘 했다고 받아, 내 이름이나 쓸줄 알면 됐지…"라며 시큰둥 하지만 이내 소녀처럼 함박웃음을 짓는다.

장 할머니와 함께 이 경로당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할머니는 50여명.

이들 할머니들 역시 뿌리깊은 남아선호의식에 가려 평생을 '눈뜬 장님'으로 살아 온, 어두웠던 시대가 양산한 문맹자들이다.

단양군이 평생교육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개설한 문해(文解)교육프로그램인 소백학교 수강생은 지난해 11월 80여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200명이 넘는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글을 배워 뭐해"라고 외면했다. 하지만 한글을 깨치는 기쁨을 만끽하는 다른 노인들의 손에 이끌려 소백학교 학생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김영식 단양군 평생학습담당은 "단양지역 성인 비문해율(글을 모르는 성인의 비율)은 15%(5000명)에 달한다"면서 "비문해자 문제는 교육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천 전국문해성인기초교육협의회 공동대표는 "민간차원에서만 이뤄지던 문해교육에 최근 국가가 나서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문해교육은 모든 것의 기본이며,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병찬기자 bcle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