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나비, 너구리, 아버지..."
전남 순천 남제동 주민자치센터 2층 한글작문 교실안에서 들려오는 한글 읽는 소리다.

교실 안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손자 응석이 한없이 좋을 나이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

17명의 할머니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다.

올해 93세의 최폰례 할머니가 그 주인공.
한글 교실 학생이 된지 한 달이 채 안된 최 할머니는 백수(白壽)를 앞둔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최 할머니가 한글 교실을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한글 교실 학생들을 보고 호기심에 `무슨 잔치라도 열렸느냐'고 물은 것이 평생 배움에 목말랐던 최 할머니를 자연스레 교실로 이끌었다.

일제 강점기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시집을 갔고 시집살이, 남편 봉양,자식 교육에 평생을 바치다 보니 어느새 환갑, 칠순을 넘어 증손자까지 둔 노(老)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도 혼자 사는 최 할머니는 "계약서, 영수증에 쓰인 글씨를 읽고 싶었다"면서 "악착같이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이 한글교실에서 가장 신입이지만 일주일에 4번 진행되는 한글 수업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학구열을 보이고 있다.

돋보기 안경을 낀 `젊은' 학생들과 달리 최 할머니는 귀가 조금 어두운 것을 제외한 곤 돋보기 안경 조차 끼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주름살 가득한 손으로 쓴 최 할머니의 글씨는 93세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듯반듯했다.

같은 반 조두순(79) 할머니는 "얼마나 열심인 지 최 할머니가 오고부터 교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글작문교실 유순례 교사는 "아마 최 할머니는 전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일 것"이라면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나 건강 면에서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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