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좌상면오백생(對座相面五百生)

그만 일로

죄면할 게 뭐꼬

누구나 눈 감으면 간데이.

하지만 돈 가지고

옛 정(情) 살 줄 아나.

또 그만 일로

송사(訟事)할 건 뭐꼬.

쑥국 끓이고

햇죽순 안주 삼아

한 잔

얼근하게 하기만 하면

세상에

안 풀릴 게

뭐 있노

사람 살면

백년(百年) 살 건가, 천년(千年)을 살 건가.

그러지 말레이

후끈후끈 아랫목같이 살아도

다 못사는 사람 평생

와 모르노.

 

- 박목월(1916∼1978)



△ ‘대좌상면’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는다는 뜻이고 ‘오백생’이 오백생 혹은 한없는 생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을 뜻하니, 제목 ‘대좌상면오백생’이란 ‘서로 마주하고 앉은 오백생의 인연’ 혹은 ‘오백생의 인연으로 서로 마주하고 앉아’쯤으로 해석될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옷깃만 스쳐도 삼백생, 대좌상면이 오백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친구나 지인, 가족은 얼마나 깊은 인연이겠는가. 시인은 ‘경상도 가랑잎’ 같은 입말로 이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돈 때문에 죄면(조면(阻面)이 변한 말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함 혹은 절교를 의미)하고 송사(訟事)할 수 있느냐며 어르고 달랜다.
오백생 이상의 인연과 대비되는 한 생에서 얼마간의 돈이라니, 그 비유만으로도 돈에 대해 넉넉해지는 마음이다. 이 마음에 더해 “후끈후끈 아랫목같이 살아도/ 다 못사는 사람 평생”임을 새겨보면, 얼마간의 돈 문제는 얼굴 마주하고 앉아 ‘얼근한’ 술 한잔 주고받노라면 풀릴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지 말레이”가 “그러레이”가 되고, “와 모르노”가 “와 모르것나”가 되면, 죄면하고 송사할 거 “뭐 있겠노”가 되는 거 아니겠나.

그렇긴 한데, “낼은 아빠 돈 벌어가지고/ 이만큼 선물을/ 사갖고 오마./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비가 변한 눈 오는 공간/ 무슨 짓으로 돈을 벌까”(‘밥상 앞에서’)…. 걱정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