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대곡리에서  2남 3녀중 장녀입니다.
12살때 4살 5살 여동생 둘이 한해 죽고 1년 후에 아버지 마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은 홧병이 나셨고 밑의 남동생은 학교를 다녔고 돌  지난  남동생은  제가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집안일과 동생 돌보기를 같이 하며
정말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짓는 농사일은 너무 힘들고 남는것이 없어 18살때
마산으로 이사를 해 가발공장에 다녔습니다.  



큰 동생은 기술을 배웠고 막내동생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루 일당 70원을 받고 2년 후 부터
돈내기를 했고 매일 잔업과 밤샘을 해서 한달에 15000원을 받고 뛸 둣이 기뻤습니다.
돈으로 어머니 약도 사드리고 동생 공부도 시키고 모든 집안일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제 나이 26살에 어머님 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저 보다 한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 후 3남매를 두고 다복 하게 살았습니다.
얼마후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가진것도 경험도 부족했기에 실패를 했습니다.


많은 빚을 갚기위해 객지를 돌다 간암이라 큰 병을 얻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2년후에 그만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후 저는 많은 부채를 갚고 3남내를 키우기위해 돈이 되는 일은 뭐든지 밤낮 없이 열심히 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십년만 죽도로  일하자  내 자식들이  대학 보내고  내 집도 마련해서  노후는 멋지게 살자


다짐하고 십 오년이 지난 지금 내 자식들이 짓을 낳고 내 집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2003년 병원을 갔더니 간 경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서울 삼성병원에서 큰 아들의 간을 이식 받는 대 수술을 하고
8일만에 깨워나니 딸이 "엄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말 잘듣고 있으면 빨리 퇴원 할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일 주일 후부터 무균실에서 한달간을 지냈다.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루에 열두번씩 약을 먹고 아침 부터 당뇨 혈압 검사를 매일하면 온 식구가 제에게
매달리며 작은 아들은 한달에 한 번씩 서울 병원에 검사 받는 저를 데리고
다니기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했습니다.


지금은 약도 하루 여덟번만 먹고 병원도 두 달에 한 번만 가며 이렇게 공부도 배우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큰아들과 며느리에게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그리고 더블어 봉사하시는 여러 선생님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2007년 10월 5일 정현순 (61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