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중심부로 자리잡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내 삶을 비춘 이 한 권(60) >>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012년 11월 06일 (화) 14:44:48 호수:97호  11면 최경숙 report@gimhaenews.co.kr

   
 
몇 년 전 여름에 전남 강진을 찾아갔다. 한적한 곳에서 며칠이라도 유유자적 해보자고 택한 곳이 강진이었다. 오솔길을 걸어 한참을 오르니 산 속에 고즈넉한 다산초당이 있었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쉰 후로, 휴가 때는 늘 강진이 중심이 되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슬픈 유배생활을 동안 아들과 친지, 제자들에게 쓴 편지글이다. 당시는 물론 현대에도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귀한 내용들인데, 특히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에 들어 있는 글들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임금을 섬길 때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임금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치 않다."
 
대체 나랏일을 어떻게 해야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주문이다. 특히 이 말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만, 나같은 소시민도 크고 작은 일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말이다.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길은 남과 나누어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물질로써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지지만,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없어지지 않는다. 무릇 재화를 남에게 시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다. 재화의 사회 환원! 재물이 많든 적든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면 영혼을 살리는 힘이 될 것이다. 충분히 가지고도 더 소유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아침 햇볕을 환하게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빨리 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시들어 거센 바람에 쉽게 떨어진다."
 
굳센 기상을 강조하는 말이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바깥생활을 하셨다. 깜깜한 밤중에 홀로 산길을 걸어 지인이 마련해 준 오두막같은 집에 들어서서 불도 못 켜고 아침을 기다릴 때, 수만 가지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어린 우리들을 떠올리며 버텼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아버지를 버티게 한 힘은 청운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다. 진수성찬보다 더 중요한 건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마음가짐이니 늘 씩씩하게 지내라는 당부였다. 우리 아버지도 어린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노라 마음을 굳건히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구구절절 새긴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겠다. 유배지에서 보낸 18년, 다산에게는 뼈에 사무친 세월이었겠지만 후손들은 그 귀한 희생 덕분에 삶의 바른길을 찾는 지표로 삼을 수 있으니 한없이 고맙다. 그래서 그의 편지는 내 삶의 중심부가 돼 있다.


   
 
Who >> 최경숙
1968년 울산 출생. 경주에서 자라,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김해야학 초등부 국어 교사 및 초등부 담임을 맡고 있으며 학원을 운영 중이다. 홈플러스 문화센터 강사, 어린이책시민연대 경남지부 강사로도 활동했다.